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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_ Train No. B

  비가 올 때는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컴컴한 속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면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공포감에 젖곤 했다. 저 빽빽한 빗줄기의 장막에 가려 아무도 내가 녹아 죽는 줄 모를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나이가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수조 속에 있음을 알았다. 꽉 막힌 공기들. 폐부에 차오르는 물줄기들. 빗소리가 머리를 두드리며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마음속으로 고여 든 물줄기가 뜨겁게 썩는다.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자신이 가진 것은 오직 질투뿐이라, 몸이 자랄수록 남을 끌어내려 진창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항상 속으로 고이고 고였다. 불쾌한 충동이 몸집을 불렸다. 단칸방 근처에 사는 상냥한 여성,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 행복한 가정의 남학생, 택배기사를 하며 본 부유한 집 중년 여성. 그는 항상 멀고 먼 타인과 타인들의 행복을 탐냈고, 그리고….

 

  빗속에서 숨이 찼다. 산소를 모두 빼앗긴 기분이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숨소리가 가빴다. 산을 오를 때마다 숨이, 가빴다. 오로지 나만 들리는 소리. 이제는 안 되겠다. 50을 넘기기 시작한 몸은 예전 같지 않아. 더 이상은 못하겠어. 자신은 너무 늙었다. 방금 살해한 남자에게 미리 독성 약품을 먹이지 않았으면 필히 자신이 쓰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은 남자는 끝내 바닥에 쓰러지고 난 장면으로 흐른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며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빌고 빌었다. 그래, 이 사람의 사랑을 빼앗은 것으로 그만하자.

  남자의 시체를 태우는 불길이 너무 뜨거웠던 탓이다. 길게 진 불 그림자가 차갑게 일렁거렸다. 불길은 뜨거웠다. 차가웠다. 뜨겁다. 뜨겁다. 아니, 차갑다. 마음에 수십 번 온도가 교차하며 시큼한 레몬 냄새를 풍겼다. 무표정한 얼굴 주름 사이사이로 그늘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독이 든 싸구려 플라스틱 병을 불타는 시체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이제 내가 욕심 부린 것들은 모두 가질 수 없음을 안다. 다만 원하는 것은 모두 불살랐다. 입가 주름에 불길의 온도가 스민다. 나는 불씨가 죽는 것을 확인하고야 후련한 표정으로 단칸방에서 전재산을 챙겨들고 절로 걸어 들어갔다. 내일 비가 내리니 발자국이 씻겨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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