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_ Train No. B
누가 누군지 모를, 검은 옷의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그들은 마치 그저 그림자처럼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어느 순간 다시 사라진다. 서로의 이름을 알고는 있을까. 통로에 줄지어 선 근조화환은 아무런 향이 나지 않고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액자 속 흐릿한 할머니의 얼굴을 봐도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평소 자주 뵙지 않았던 터라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존경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큰 슬픔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을 구석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친절하게 조문객을 맞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구김 하나 없는 검은 정장을 입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떤 사람을 소개하는 중인 듯 보였다. 이 순간에도 가식적이고 텅 비어 있는 미소가 두 사람의 얼굴에 짙게 번져 있다. 그리고 이런 미소조차 한 번도 나를 향한 적이 없었다.
“온 지 몰랐네.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를 하지 그랬냐.”
어느 순간 아버지가 내 앞에 서서 나를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나 표정은 다시 굳어 있다. 낮게 깔린 그의 검은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어둡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는 거냐? 그딴 곳도 회사는 회사일 테니까.”
날선 칼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목구멍을 깊게 찔러왔다. 대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검사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당신들보다 더 크고 대단한 직업을 가져야, 그래서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고 했다. 매 시험마다 나는 떨어진 등수만큼의 멍이 들었고 줄어든 점수마다 야위었다. 방 안에서 혼자 숨죽여 우는 것을 들켰을 때 마다 아버지는 ‘너무 원망하지 마라.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다.’라 말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 위안적인 말이었다.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을 좀 해라. 그러니까 네가 매사에…”
“네.”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뱉으며 고개를 퍼뜩 들었다. 내 시선이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아찔하다.
“어디서 아버지가 이야기하는데 말을 중간에 자르는 거냐? 이제 다 컸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