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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늘_ Train No. B

  경찰이 산링에게 다가왔다. 동료 경찰이 미안하다는 듯 산링에게 눈인사를 했다. 산링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노라고, 산링은 잇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신을 에워싼 경찰들 사이를 당당하게 걸었다. A시 살인사건의 용의자 산링은 C시의 작은 서에서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날은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던 여름이었다. 나시를 입었음에도 끔찍하게 달라붙는 땀들. 며칠 째 지지부진한 수사. 모든 게 불쾌한 날이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날일지도 몰랐다. 리우리우는 내 팔에 팔짱을 끼며 행복하다는 듯이 울었다. 나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고 내게 속삭이는 나의 끔찍한 연인. 리우리우는 언제나 내게 칭얼거리기 바빴다. 매주 만나고 싶다고 보채는 게 그의 일상이었고, 나는 쉬는 날을 리우리우에게 반납해야했다. 옆에선 리우리우의 조잘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어제는 같은 부서 누구 씨가 이랬는데 정말 꼴불견이었다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리우리우는 자신이 이야기꾼이 된 것 마냥 뒷담화를 늘어놨다. 그러나 나는 만나는 날마다 펼쳐지는 리우리우의 보따리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우린 언제인가, 별을 보며 미래를 약속한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우리의 만남이 의무가 되었던 그 순간부터 여름의 마법은 풀렸다. 우리가 함께 봤던 여름 축제의 그 폭죽처럼 내 심장도 터져 없어진 것만 같았다. 마치 이제는 사랑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듯.

그 날은 분명 날씨가 불쾌한 날이었다. 끈적이는 땀. 끈적이는 애인. 끈적이는 관계. 나는 진척 없는 수사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애인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을 텐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거듭 말하건대, 그 날은 불쾌한 날이었다.

 

  헤어지자 리우리우.

 

  말은 쉽게 나와 허공에서 흩어졌다. 리우리우는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농담이 살벌하다며 내 눈치를 보는 작고 가여운. 나의 끔찍한 리우리우.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줘서 말했다. 헤어지자 리우리우. 농담하는 거 아니라는 말이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리우리우는 울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너의 울상은 나의 일상이었고, 나의 우울은 나를 좀먹어갈 뿐이었으니까. 그래, 이건 뼛속까지 잠식당한, 더위에 잠식당한 사람의 발버둥이었다. 이러다가 내가 먼저 무너져 내려 모든 걸 포기할 것 같아서. 나는 사건 번호를 입속으로 외며 손으로는 주머니에 있을 젤리를 찾았다.

  리우리우는 언제나 끈질겼다. 나와 사랑을 속삭이던 시절에도 그는 그랬다. 그런 면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라면 모진 세상에 던져진 나를 함께 지탱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볼펜을 달칵이면서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까지 보내주기로 한 자료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미 상사는 내게 전화로 수차례 경고를 한 참이었다. 자료가 늦어지는 것도 아마 그 탓일 거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나는 입속에서 젤리를 천천히 씹었다. 고무 같은 질감이 잇속에 달라붙어 기분이 나빴다. 나는 과도한 업무에 치여 죽을상인 팀원들에게 말했다. 신입을 한 명, 데리고 오자고. 환호성이 울리는 사무실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일정을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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