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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살인사건_ Train No. B

  산링은 휴가를 가고 있던, 비번 경찰이었다. 그러나 일할 시간이 아니라고 해서 경찰의 정의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산링은 동료 형사에게 A시 플랫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현장 자료를 요청했으나 동료 형사는 곤란하다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산링은 답답함에 자신의 사건 파일을 꺼내들었다. 서로 눈치만 보느라 적막이 감도는 열차에 종이가 팔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산링은 자신의 담당한 사건 중 유사한 사건이 있는지 찾아보려 했으나 의뭉스럽게 종결된 과거의 사건들이 자꾸 눈에 밝혀, 결국 파일을 닫았다.

 

  산링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사건. 결국 범인은 못잡았었지.”

 

  일영이 산링의 말에 끼어들었다.

 

  “어떤 사건 말인지요?”

 

  “예전에 담당했던 사건입니다. 이미 공소시효도 지난 사건이지만, 제 첫사건이기도 했죠. 들어보셨습니까? 레몬살인사건이라고.”

 

  일영은 싱긋 웃었다.

 

  “물론 들어봤죠. 범죄자라면 이런 루트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일영이 기차 내에 배치된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 몇 개의 길을 그었다. 산링은 그 루트를 곱씹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듯 하군요.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 더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기차의 운행 시간은 길었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었다. 무인 열차라는 특성 덕에 살인자와 한 공간에 있게 되었지만, 계속 경계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최소한 다 같이 있을 땐 추가 살인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저마다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테이블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다. 다른 이들이 재빨리 한 자리씩 엉덩이를 붙이는 동안 유유자적하게 서있던 일영이 결국 산링의 맞은 편에 앉았다.

 

  “다들 행동이 빠르군요.”

 

  “시국이 시국이니까요. 스님은 아이도 챙겨야 할 텐데, 편하게 앉으십시오. 뭐, 살인자랑 함께 있는 열차에서 얼마나 편해질 수 있겠냐 싶지만 말입니다.”

 

  산링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일영은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간간히 대화를 나눴다. 그래봐야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휴식은 그들의 지친 육체를 달래기엔 충분했다. 산링과 일영은 주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영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고, 산링은 온 신경이 열차 사건과 자신이 휴가를 쓰기 전에 담당하던 사건에 쏠려있기 때문이었다. 일영은 산링이 골머리 썩는 걸 보며 간간히 몇 마디를 던졌다. 산링은 일영의 말이 굉장히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아까 레몬살인사건에서 말했던 범죄자 도주 루트도 그렇고. 그래서 산링은 일영에게 계속 기시감을 느꼈다.

 

  “혹시 예전에 경찰을 업으로 삼은 적이 있었습니까? 범죄 사건에 대해서 굉장히 해박하다는 인상입니다만.”

 

  산링의 의문에 일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중생이 그런 험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운이 좋아 경찰관님께 도움이 되었나봅니다.”

 

  일영은 여전히 의뭉스럽게 산링의 말을 넘겼다. 산링은 그렇습니까, 라며 흘렸지만, 여전히 일영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일영은 계속해서 범죄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몬살인사건도 그렇고, 열차 사건도 그렇고, 산링이 담당했던 대부분은 사건을.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유능한 경찰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산링은 왜 일영이 경찰이나 일반인의 시각이 아닌 범죄자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혹시 열차에서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일까? 산링은 속으로 수많은 의문을 그리며 다시 한 번 사건 파일을 펼쳤다. 답답한 기분이 들 때,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을 되짚어보는 건 산링의 버릇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맨 첫장에는 떡 하니 일영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산링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들었다. 분명 같은 사람, 같은 사람이다. 지금의 일영은 머리도 없고 많이 늙은 모습이었지만, 자신의 첫 사건이자 범인의 뒷태도 구경하지 못한 사건의 용의자를 잊을 리가 없었다. 산링은 몽타쥬를 손가락으로 쓸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님. 잠시 일어나주시겠습니까?”

  일영은 무슨 일이냐 물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산링은 잠시 모두와 할 얘기가 있다며 자신에게 이목을 끌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들이 산링을 쳐다봤다. 일영 또한, 산링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지금 괜히 튀는 짓을 해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일영이 테이블에서 나오자 산링은 재빨리 일영의 팔을 뒤로 꺽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쾅. 일영의 머리가 벽과 강하게 부딪히면서 큰 소리가 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일영이 항의하려던 찰나에, 산링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일영에게 겨눴다.

 

  “이 위선자! 범죄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산링은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레몬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A역 플랫폼 살인사건의 용의자. 일영, 살인을 한 뒤 우리를 우롱하며 재미를 느꼈나? 어리석기는!”

 

  산링은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 같았다. 희열에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진정하세요.“

일영은 말을 삼켰다가 한숨을 내쉬곤 이내 특유의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야 없지요. 제가 그 사건의 범인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저는 더 이상 용의자가 아닙니다. 이미 저는 10년 전부터 불교에 몸담고 마음을 가다듬는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범죄를 저질렀을지언정, 현재의 범인으로 지목하실 수는 없지요.”

  그리고 일영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한다. 감성에 젖어들 때쯤 누군가 외쳤다.

 

  “다들 정신차려! 저거 장난감 권총이잖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산링은 싸늘한 눈빛으로 일영과 포우를 번갈아서 봤다. 마치 한 패냐고 묻는 듯 했다. 그러자 포우는 부인하며 다시 산링의 권총을 가리켰다. 방아쇠도 없고, 누르는 부분도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며. 너무나도 조악한 장난감이었다. 포우의 말을 들은 메이준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당신, 경찰이 맞긴 한가요?”

 

  “혹시 범죄자인 것도 당신이 물타기 하는 거 아니야?”

 

  조용한 물음이 파문을 일으켰다. 산링은 딱히 해명하지 않았다. 그에 일영은 자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비비며 산링에게서 빠져나왔다.

 

  “이거 정말 곤란하군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람을 몰아가면 되겠습니까. 이젠 정말 경찰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니. 혹시 산링 당신이 범인인 것은?”

 

  결국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누가 누구인지, 누가 진짜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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