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공과 실패#2_ Train No. B

  급한 마음에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를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걸 보면 어딘가로 외출한 모양이었다. 지금이다. 도둑은 아니지만 집에 아무도 없으면 더 괜찮을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이래저래 설명하기에는 이미 너무 지쳤다. 어차피 어머니라면 당신의 아들에게 선뜻 내어 줄 것이 분명했다.

  안방에 발을 디디자 어머니의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옆으로 돌아보면 낡은 장롱이 보인다. 바로 저 장롱이다. 저 안에 나의 화려한 미래가 잠들어 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롱의 문을 열어 재끼고 겹겹이 쌓여 있는 이불을 하나씩 바닥으로 내리쳤다. 형편없이 구겨져 서로를 덮치고 누르는 이불의 모습이 지난 나의 악재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제 이따위 것들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다시금 그런 확신이 든다.

  이윽고 현금뭉치와 어머니의 보석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액수를 가늠하자니 그만 정신이 아득해진다. 오늘은 우선 비싼 술집에 가서 고급주를 마셔야겠다. 그 후에는 까탈스런 집주인에게 밀린 원세를 보란 듯이 던지고,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팁을 얹어 줘야지. 기름이 좔좔 흐르는 넘김 머리를 하고 내게 쩔쩔매며 웃는 집주인을 상상하며 미리 챙겨 온 가방에 현금과 어머니의 귀걸이, 그리고 목걸이를 우겨 넣었다. 가방이 두둑해질수록 심장은 더 격하게 뛰어왔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기분인가.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를 가볍게 자책하다가도 금방 웃음이 새어 나온다.

 

 

  등 뒤로 찢어질 듯 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뒤를 돌아보면 소스라치게 놀란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뭐 하는 짓이야?”

  어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게 달려들어 묵직한 가방을 빼앗았다. 찰나에 스쳐지나간 어머니의 눈은 경직되어 있었다.

  “돈이 좀 필요해서.”

  “그렇다고 훔쳐? 그리고 애초에 이건 줄 생각이 없다!”

  “아들이 성공 좀 하겠다잖아!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나는 어머니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늙고 작은 손에 힘껏 쥐어진 가방을 뺏어들기 위해 손잡이를 당겼다. 그에 질세라 어머니 또한 제 쪽으로 힘을 실었다. 애초에 줄 생각이 없다니. 이렇게 많은 돈을 숨겨두고 아들이 실패하는 꼴을 보면서도 돈 한 푼 보태지 않은 게 누군데.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웃기지 마라. 평생 너 하는 짓을 봐 왔지만 너는….”

  “가방 내놔!

  순간 반대쪽에서 힘이 빠지더니 가방이 짧게 공중으로 붕 떴다. 구겨진 현금과 번쩍거리는 금의 무언가가 함께 뛰어 올라 가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바닥에 흩뿌려진 나의 미래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가방이 다시 두둑해짐에 따라 정신이 점점 아찔해져왔다. 어느 순간 싸구려 향수 냄새는 희미해지고 지폐의 냄새가 코 주변을 감돌아 나를 흥분하게 했다. 이윽고 가방을 매자 그 무거움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어머니?”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어머니는 고목처럼 쓰러져 작은 미동도 없었다. 상황파악은 빨랐다. 어머니가 죽었다. 머리 주변에 흥건하게 고인 붉은 피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가방에 손이 미끄러지면서 문틀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 분명했다.

  피가 제 영역을 넓혀오듯 점점 내 발 끝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죽어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 오는 것 같았다. 순식간이었다. 실수였다. 나의 잘못이 아니다. 가방을 뺏은 것도 어머니였고, 갑자기 놓아버린 것도 어머니였다.

  젠장.

  젠장.

  젠장.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빠르게 교차하는 두 다리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코피인지 콧물인지 모를 뜨거운 액체가 코끝에서 시작해 턱 선을 따라 흐르고 있다. 그냥 열심히 살고자 노력했을 뿐인데, 내가 대체 무얼 잘못했길래.

  문득 다시금 아내가 했던 말이 바람처럼 불어든다. 인간답게 살아.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