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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_ Train N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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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시카메라

  (방의 끝머리에서 그림자 속의 카메라가 사각 없는 방을 비춘다. 여자의 뒤통수가 조금 수그러져 있다. 여자는 의미없이 종이컵 모서리를 문지른다. 그때, 문이 열리며 형사가 들어온다. 형사가 묻는다.)

 

  왜 죽였죠?

 

 

  #메이의 진술

  (여자는 시선을 컵에 고정한 채다. 간헐적으로 컵 모서리를 문지르다 드러난 제 손목을 보고 손을 내린다. 새까만 피멍들은 잡아 내린 소매에 숨겨진다.)

 

  죄송해요. 그렇게 좋은 사람을 주, 죽이다니, 자수하고 구급차를 불렀어야 했어요. 오빠 말마따나 성격도 소심하고 잘난 것 하나 없는 저를 아껴주는 건 오빠밖에 없는데.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일기장 보셨죠? 증거물로 가져가셨잖아요. 오빠는 우리가 이상하다 여기지도 않고 편견 없이 대해줬어요. 그런데 요즘 부쩍 화를 내고 예민해졌어요. 이유를 물어도 답을 해주지도 않고... .

 

  (길어지는 연애담에 경찰이 관심 없다는 듯 여자의 말을 끊고 탁탁, 책상을 손바닥으로 작게 두드린다. 작은 취조실에 소리가 울린다. 그건 여기까지만 하고, 범행 상황은요? 묻는 소리에 여자는 잠시 말이 없다. 여자는 제 손목의 멍 자국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연다.)

 

  오빠가 화를, 화를 냈어요. 정말 왜 화를 내는지 알 길도 없이, 갑자기. 제가, 제, 제가 너무 당황해서, 아파서... 분명 머리를 감싸고 웅크려 소리를 질렀던 건 기억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오빠가 바, 바닥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더라구요. 너무 무, 무서웠어요. 제가 멍하니 핏자국만 보고 있으니 준이 말했어요.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도와줄게.

 

  (여자의 몸이 앞으로 튀어 오르며 간절한 눈으로 형사를 바라본다. 의자에서 작은 결림 소리가 난다. 메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다급한 어투.)

 

  하지만 죽인건 저, 전데 주, 준은 어떻게 해요? 제가 그 애 인생을 망쳤어요.

 

  (고개를 푹 숙이자 테이블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여자는 말이 없다가 한참 뒤에야 잔뜩 젖어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입을 연다.)

 

 

  #준의 진술

  (여자는 등을 꼿꼿하게 펴고 앉아 종이컵 가장자리를 의미 없이 만지작거린다. 경찰이 한 메모를 곁눈질하다가 아. 하고 작게 탄성하곤 작게 웃는다. 서늘하게 식은 눈.)

 

  그 새끼는 정말 쓰레기였어요. 나는 가끔 메이 취향을 알 수가 없다니까, 정말. 그래, 우리 대단하신 오빠-는요. 서른 먹고도 변변한 직업 없이 부잣집 하자있는 외동딸 아가씨한테 추근거리는 게 희망인 남자였어요. 메이는 그 새끼 뭐에 껌뻑 넘어갔는지. 정신이 잔뜩 팔려선. 일기마다 오빠오빠.

 

  (경찰, 수첩에 메모를 하다 멈추곤 당신은 그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요? 하고 묻는다. 여자, 재미있다는 듯 킬킬 소리내 웃는다.)

 

  나는 그 가식 떠는 꼴이 평소에도 아니꼬왔는데. 몇 번 성질부려주니까 제 성격 나오던데, 웃기기도하지. ‘오빠’ 몸에 있는 멍 자국? 맞아요. 내가 그랬어요. 그래도 돈이 좋긴 좋던가봐. 평소에 그렇게 얻어맞고 바득바득 옆에 붙어있더라.

 

  (키득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린다. 여자가 보란 듯 소매를 걷어 올린다. 갖가지 멍들이 손목을 덮고 있다.)

 

  그 새끼는 메이를 자주 때렸어요. 이거 보여요? 메이의 몸에 이런 상처들이 잔뜩 있어요. 나한텐 한 마디 못하면서, 메이가 순하다고 함부로 손찌검 했다구요. 그 날도 그랬어요. 그 무인모텔에서 메이의 무슨 말에 꼭지가 돌았는지, 그 애를 죽일 듯이 걷어차고 때렸어요. 아니, 사실 죽일 생각은 아니었겠죠. 그건 그 자식한텐 그저 일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메이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어요. 메이는 그동안 너무 약해져있었고, 너무 오래 힘들어했어요. 내가 그 새끼를 죽이지 않았으면 모텔에서 죽어 있는 건 메이와 나였을 거예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목 졸라 죽일 수밖에. 그게 다예요. 모텔에서 내가 있던 흔적들을 지우고 기차에 탔어요.

 

  (여자는 제 할 말을 마쳤다는 듯 등받이에 푹 기대앉는다. 이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래도 내가 너무했나봐. 메이가 그렇게 심하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여자는 경찰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치뜨곤 또박또박 말한다.)

 

 

  “제 얘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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